카테고리 없음

8만원으로 서울 상경 한 썰.

감성충만 감성만 2023. 9. 24. 23:20
728x90
반응형

왕십리 재개발촌이다. 이제는 아파트가 들어서서 흔적도 없는 곳이 되었다.

 

 

내가 살 던 시골집은. 

쬐끔쬐끔씩 농사거리가 있었다. 

그 중 개인적으로 최고 힘든 건 고추. 

 

고추가 병에 걸리거나 비를 맞고 나면 

안에 썪은 물이 고여서 밟기라도 하면 아주 고약한 냄새를 뿜어댄다. 

제일 날이 더울 때 고추를 따는 데. 

땀을 닦는다고 손을 댔다가는 하루 종일 얼굴이 

뜨끈 거린다. 

 

그렇게 힘들게 딴 고추를 날이 좋으면 지붕에도 널고 길에도 널고 

날이 좋다가도 비가오면 불이나케 날아가서 고추 걷어드리고. 

 

아.. 솔직히 좀 아니다. 

 

예를 들어 

한포대기 고추를 따고

건조 작업을 마치고 나면 반포대기로 줄고 

이걸 방앗간에서 찌어오면 한봉지가 된다. 

 

돈얘기가 금기시되다 싶히한 집안 분위기에 

고민을 하다가 엄마한테 물어봤다 

"이렇게 고추 농사한거 얼마나 되는거야?"

 

엄마는 10만원이라고 했다. . 

 

진짜 ??...뭔가 잘못된게 아닌가.. 

서울 상경을 결심한건 그때가 시작이 아닐까 싶다. 

 

나는 서울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허락을 구했지만 

부모님은 허락해주시지 않으셨다. 

기나긴 갈등 끝에 / 지원 받는거 없이 

8만원만 들고 서울로 올라갔다. 

거창한듯 말했었지만 계획도 없었고 겁도 낫다. 

 

그나마 다행인건 

8만원이라는 돈이 지금 보면 별거 아니지만 

당시 런치 햄버거가 싸면 3,500원도 했었다. 

 

8만원으로 뭘 시작해야 할까?

우선 나는 치킨을 한마리 샀다. 

맥주 피쳐도 하나 사고. 

 

좀 의외지??

 

그리고 친구의 고시원으로 갔다. 

다행히도 마음착한 친구였던지라 

친구 고시원의 바닥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고시원보다 조금 더 작았다. 

머리는 문에 닿았고 발끝은 벽에 닿았다. 

침대를 옆에둔 바닥은 어좁이인 나의 어깨에 딱 맞는 폭이었다. 

 

거의 한 달을 그렇게 지냈는데 

친구가 아침에 나가면서 문을 열며 

내 머리를 부딪혔다.  몇차례 반복되니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바로 다음날

그간 모은 돈으로 고시원을  얻었다. 

정말 너무 좋았다. 

지금의 기분으로 보자면 왠지 한강뷰의 아파트를 산 기분 정도는 아닐까 싶다. 

아무 눈치 없이 나만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게다가 이곳은 라면과 계란 김치가 무료 제공되었다. 

 

라면은 채워지는 주기가 있는데 

채워질때마다 각 방에서 쟁여두느라 눈치 전쟁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때 쟁여둔 라면을

알바를 가서 점심에 먹었다. 

삼시세끼를 라면으로 때웠다. 

 

그러다 어느날 계란후라이를 해먹는데 

팬에 남아있던 물기때문에 기름이 여기저기튀기 시작했다. 

때마침 들어온 고시원 관리 직원이 

진짜.. 썅욕을 퍼부었다.

 

화가 났지만, 소심한 성격탓에 무안함이 더 커서 

굴욕만 당했다. 

 

그 날로 저렴한 월세방을 알아봤고 

위치는 기찻길옆  쪽방 같은 곳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진짜 좁은 개구멍 같은 골목을 들어가면 나왔다. 

 

집으로 들어가는 문은 반은 유리 반은 철제였다. 

즉.. 누가 맘만 먹으면 깨고 들어가도 되는 그런 집. 

 

그래.. 뭐 어째뜬 고시원보다 낫겠지 

여기는 내 화장실도 있고 

주방도 있고. 

 

첫 날.

밤에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방에 누워 손을 뻗어 벽을 쳐보니.. 

통통. 나무 합판 소리가 났다. 

콘크리트 벽이 아니었다. 

 

밤11시가 퇴근시간이었는데 

배 고픔에 집앞 슈퍼에서 라면을 샀다. 

 

막상집에 들어오니 

배고픔보다 피곤함이 더 심해 

라면을 싱크대에 올려두고 

잠에 들었다. 

 

다음날 자고 일어나보니 

봉지는 모두 뜯어져 있고 

라면 가루가 여기저기 튀어있었다.. 

(이게..무슨 상황인가??) 

 

믿고 싶지 않지만.  쥐 밖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이때부터 쥐나 벌레를 더 ! 심하게 ! 극도로 싫어하게 된 것 같다. 

 

또 다시 고시원으로 들어갔다가 쪽방 원룸.

그다음은 재개발촌 반지하 그다음은 혐오시설 근처의 옥탑 

그다음은 가건물의 옥상 

그 다음은 대학가 원룸.  그다음은 빌라 전세 ...  

 

정말 이사만 12번이다. 

실제 관리를 따로 하거나 부부거나 공동명의등이 있는 관계로

핸드폰에 주인만 검색해도 20명이 나온다. 

 

하지만, 이제는 내 집 입주를 앞두고 있다. 

조금 아쉽지만 내가 동경하던 서울은 아니다. 

 

얼마전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을 읽었다. 

정주영 회장의 상경 과정이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경 이후의 모습에는 많은 차이가 있음이 느껴졌지만 

 

이제라도 

그 뒤의 모습마저 비슷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소중히 살아야겠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