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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보다 지하철

감성충만 감성만 2024. 6. 9.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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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나 20년 동안 쭉 충남 홍성의 시골 논 가운데 집에서 자랐다.

가까이의 이웃은 오직 논에 사는 개구리뿐이었다.

그곳에서 자라며 티비에서 보는 서울의 빌딩과 공원, 화려한 거리는 꼭 가보고 싶은 미지의 땅 같은 곳이었다.

그러다 태어나 처음으로 서울에 갈 기회가 생겼다.

2005년 한국외국어 대학교 수시 시험 응시를 위해 서울에 가게 됐다.

서울에 도착한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골에서는 버스를 놓치면 3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지하철이 거의 5분 단위로 오가는 상황이 그저 신기했다.

 

영등포역에서 회기역까지 가는 동안 나는 처음 보는 지하철의 모습과 서울 사람들,

모든 것이 그저 새롭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보던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긴장된 상태로 지하철을 타니 가방이 내 어깨를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무거운 가방을 잠시 지하철 상단 선반에 올렸다.

회기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정신없이 내렸다. 그리고 지하철 문이 닫히는 순간,

내 어깨가 너무 가벼움을 느꼈다. 그 당시 핸드폰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앞이 막막했다. 당황한 나는 지하철 역무실로 향했다.

 

역무실에 들어가 나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역무원분은 지하철 번호와 칸을 물어봤지만, 나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긴장한 나를 안쓰러워 하시며

내가 내렸을 때 자판기가 보였는지, 출구와 가까웠는지 나를 달래며 최대한 많은 힌트를 얻으려 하셨다.

 

 

 

나는 태어나 20년 동안 쭉 충남 홍성의 시골 논 가운데 집에서 자랐다.

가까이의 이웃은 오직 논에 사는 개구리뿐이었다.

그곳에서 자라며 티비에서 보는 서울의 빌딩과 공원, 화려한 거리는 꼭 가보고 싶은 미지의 땅 같은 곳이었다.

그러다 태어나 처음으로 서울에 갈 기회가 생겼다.

2005년 한국외국어 대학교 수시 시험 응시를 위해 서울에 가게 됐다.

서울에 도착한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골에서는 버스를 놓치면 3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지하철이 거의 5분 단위로 오가는 상황이 그저 신기했다.

 

영등포역에서 회기역까지 가는 동안 나는 처음 보는 지하철의 모습과 서울 사람들,

모든 것이 그저 새롭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보던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긴장된 상태로 지하철을 타니 가방이 내 어깨를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무거운 가방을 잠시 지하철 상단 선반에 올렸다.

회기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정신없이 내렸다. 그리고 지하철 문이 닫히는 순간,

내 어깨가 너무 가벼움을 느꼈다. 그 당시 핸드폰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앞이 막막했다. 당황한 나는 지하철 역무실로 향했다.

 

역무실에 들어가 나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역무원분은 지하철 번호와 칸을 물어봤지만, 나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긴장한 나를 안쓰러워 하시며

내가 내렸을 때 자판기가 보였는지, 출구와 가까웠는지 나를 달래며 최대한 많은 힌트를 얻으려 하셨다.

사실 나는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쉽지 않을 정도로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었다.

내가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음료수도 주시며 천천히 나를 기다려주셨다.

역무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기다리는 것 밖에는 없었다.

가방을 잃어버리고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며 나는 마음속으로 포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다시 가방을 찾을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해가 다 지고 밤이 되었을 때, 역무원 한 분이 내 가방을 들고 계셨다.

벌써 19년이 지났지만, 그 가방이 나에게 전해진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때 정말 많은 분의 노력으로 나는 다음날 무사히 대학교 수시 시험을 볼 수 있었다.

 

가방안의 내 수험표.

그리고 내가 준비한 노트가 그대로 내 손에 전해진 순간이 너무도 감사했다.

 

그저 시험에 대한 생각에 스트레스만 있었는데,

일상에 대한 감사함 역무원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되었다.

 

사실, 그때의 저는 너무 긴장해서 감사하다는 말씀 한 번 제대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꼭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에게 평생 잊지 못할 감사함을 선물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은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이곳저곳을 주말마다 여행을 합니다.

그때의 감사함을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였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도움을 받게 되면 감사 인사를 꼭 드리라고 말했습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꼭! 먼저 손을 내밀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역무원분들께 그때의 감동과 감사함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위해 노력해주심을 잊지 않겠습니다.

 

지하철은 저에게 교통수단 이상의 감사한 기억을 안겨준 소중한 공간입니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그때의 역무원 분들처럼 저 역시 따뜻한 기억을 남겨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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